7년 전 떼제를 방문해서, 일주일간 침묵 피정에 들어갔을 때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 만큼이나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그곳에서 흐르는 시간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과정이었다.

기도-식사-산책-독서-잠  을 반복하는 느리고 단순한 일상.
그 느림에 적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5분 단위로 출석과 지각이 갈리고
30분 단위로 수업이나 회의가 잡히고,
10분 후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 싫어서 정류장까지 뛰어가고
잠이 오지 않아도, 다음날을 생각하며 억지로 잠자리에 들고... 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다보니

눈 감는 시간에 잠자고, 눈 뜨는 시간에 일어나고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느긋하게 걸어가서 '원하는 만큼' 기도와 묵상과 노래를 하고
가고싶은 곳까지 걸어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는
그 '느림'이 너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

아이를 키우면서, 7년 전의 떼제 생각이 여러 번 났는데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 '느림'에 대한 것이었다.
이녀석을 재우려고 끌어안고 토닥거리다 보면 한시간 정도는 그냥 훌쩍 지나가기도 하고.
밥 먹이다가, 게워낸 옷 갈아입히다가, 기저귀 갈다가... 이러다 보면 또 그냥 몇시간 훌쩍.
가끔은 웃는 거, 뒤집는 거, 재롱떠는 거 구경하다가 그냥 몇시간 훌쩍.

그러다보니 타이트한 시간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거 자체가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ㅋㅋ
3시에는 어디 나가야지... 생각하고 있어도
이녀석이 낮잠을 오래 자버리거나, 그시간쯤 울음이 그치지 않거나, 밥을 덜 먹었다면
부모는 그냥 아이가 준비될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나와 아내의 시간을, 아이의 그 느린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

+

사실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게,
어쨌거나 부모는 5분 단위로,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쓰는 게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출근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니깐.
이건 현실.
그리하여 지난 4개월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한 것도 사실.

+

그런 연유로...
이직이라는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받은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서 쓰지 않아도 되는' 2012년 1월의 휴가가 참 소중했다. :)

꼭 오늘까지 해야 할 일도 없고, 꼭 이 시간이 아니면 안되는 일도 없었기에
느긋하게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시간에 맞춰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 스케쥴에 따라 아이를 움직이는 걸 가능한 줄이고
아이의 스케쥴에 따라서 우리가 움직이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다보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깊이 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1주일간의 휴가였다면, 아마도 그렇게 여유있게 바라봐줄 수 없었겠지... 싶다.
남은 기간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그러다보면 하고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도 계속 떠올랐을테니.


약간은 고집부려(?) 얻은 한 달을.  
꽉 채워서 보낸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제법(!) 읽어내려간 책들과,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꼬박꼬박 운동하게 된 건 덤이고.

+

한달쯤 전에, 2012년 1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주위에선 다들, 여행가라고 등떠밀곤 했는데 ㅎㅎ
굳이 배낭메고 외국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흔히 경험하기 힘든 일을, 흔한(!) 환경에서 재미있게 했다는 생각이다.
이정도면 언제 되돌아보더라도 2012년 1월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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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비웠고, 충분히 채웠으니
다시 슬슬 달려봅시다. ㅎㅎ


2012년 2월 1일.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예정.
서울 한파주의보.  내일 아침 -13도.  젠장.





2012/01/31 21:35 2012/01/3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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